4차 산업혁명 시대, 우리는 기계의 톱니바퀴가 될 것인가?


사회는 우리가 거대한 기계를 움직이는데 꼭 필요한 톱니바퀴가 되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기계에는 여러가지 종류의 톱니바퀴가 있다. 움직이는 기계의 동력을 전달하고 방향을 바꾸는 핵심적인 톱니바퀴가 빠지면 기계는 멈춘다.


기계의 입장에서 핵심적인 톱니바퀴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부품이다. 그렇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렇게 중요한 톱니바퀴 역시 하나의 부품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톱니바퀴 혼자서는 어떤 일도 할 수 없다. 다른 기계 속의 부품으로 들어가지 않는 이상 매 주 발생하는 재활용 쓰레기의 고철함에 들어가야 할 처지인 셈이다.

세스 고딘은 '이제는 작은 것이 큰 것이다'에서 사회에 순응하도록 잘 교육받은 톱니바퀴 같은 우리의 모습으로는 자립하기 어렵다고 강조한다.

"결국, 남에게 평가받고 측정되는 일로 성공하거나 부자가 되기는 불가능하다.

나는 당신이 위 문장을 두 번은 되풀이해 읽어 보았으면 좋겠다.
우리의 국가(혹은 당신의 국가)와 경제,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이 성공할 유일한 방법은 이렇다.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라. 이 세상에는 새로운 규칙을 만들 사람들이 언제나 부족하다"

나는 고딘의 말에 일백프로 동의한다. 남이 만든 판에서 아등바등해서는 앞으로 펼쳐지는 4차 산업혁명의 미래에 개인이나 국가나 어려움에 직면할 가능성이 많다.


경쟁하지 말고, 새로운 판을 짜라


새로운 규칙이란 다른 사람이 몰리지 않는 새로운 세계다. 새로운 규칙을 만드는 사람은 판을 짜는 사람이다. 우리는 새로운 판을 짜는 사람을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물을 얻기 위해서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사람들이 모인 우물에 줄을 서는 것이다.
괜찮은 우물에는 사람들이 몰리기 마련이다. 그곳은 검증된 우물이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이 몰리기 때문에 물을 얻기 위해서 경쟁이 심하다. 새벽부터 줄을 서야할 수 있고 1인당 정해진 분량의 물만 얻어갈 수 있다.


그마저 우물물이 고갈되면 빈손으로 가야할지도 모른다. 그곳이 안전하다고 생각하지만 큰 소득을 얻을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사실 안전하지도 않다. 많은 사람으로 인해서 언제 우물이 폐쇄되어 부도날지도 모른다.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시간이 걸리지만 나만의 물을 얻는 방법이 있다. 다른 사람이 아무도 가지 않은 곳에 가서 우물을 파는 것이다.
쉬운 일은 아니다. 생각은 있지만 몸이 잘 움직여지지 않는 일이다. 새로운 우물을 파는 것은 고생이다. 맨 땅에 곡괭이질과 삽질을 해야한다. 몇 일이 걸릴지도 모른다.

우물이 나올 거라 확신하고 수고했지만 실패할 수도 있다. 실패에 대한 낙심이 나를 짓누른다.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아예 포기하기를 거부하기로 작정한다. 다시 일어선다. 곡괭이를 들고 두 손으로 자루를 꽉 움켜쥐고 힘껏 땅에 내리친다.


계속해서 우물을 파다보니 우물 파는 노하우를 터득하게 된다. 몇 번 파보니 될 성싶은 우물이 어떤 것인지 알게된 것이다. 나만의 노하우를 잘 정리해서 기록해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수맥을 찾는다. 대박이다. 이곳은 아무도 모르는 곳이다. 1년 내내 온 가족이 물을 먹어도 물은 고갈되지 않는다. 우물물이 너무 많이 나와서 페트병을 가져와서 물을 담는다. 남은 물은 물이 필요한 사람에게 팔거나 나누어줄 요량이다.

우물을 파는(digging) 노동자에서 우물 파는 하이테크 기술을 판다(selling). 그리고 물리적 부산물인 천연광천수를 페트병에 담아서 판매한다. 이젠 노동자가 아니라 어느덧 사업가가 되어있다. 우물 파는 노하우를 알고 싶어서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 여기저기 우물터에서 줄서던 사람들 중에는 편리하게 당신이 만든 페트병을 사먹는 사람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이 가는 길을 거부하고 새로운 우물을 판(digging) 사람은 새로운 판(platform)을 짠 사람이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안전한 첫걸음은 자신만의 판을 짜기로 마음먹는 일이다.
남이 짜는 판에 아등바등하지 않고 새로운 판을 짜는 행동은 4차 산업혁명이 다가오는 미래 시대에 더욱 중요한 일이 되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틈새를 생각해보자


새로운 판은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틈새를 말하기도 한다. 세스고딘은 월트디즈니가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한 우물을 팠던 경험을 말한다. 그는 그것을 틈새라 표현한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월트 디즈니는 뛰어난 틈새 사냥꾼이었다. 그는 삶이라는 연속체에서 틈새를 찾아내고 거기에 모든 것을 걸어 이윤을 남긴(그것도 세 번씩이나)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틈새란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의 '삶의 규칙'이라는 구조물에 생긴 커다란 균열이다.


사업에서 크게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우연히 발견한 틈새를 기반으로 사업을 구축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런 일은 대개 한 번으로 그친다.
그러나, 디즈니는 달랐다. 그는 진짜로 천부적인 사람이었고, 세 번씩이나 틈새를 찾아냈다.

첫 번째로 그는 영화가 엔터테인먼트의 세계를 바꾸어 놓을 거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간파했다. 머지않아 가족 오락물에 대한 수요가 폭발할 것임을 알아차린 디즈니는 애니메이션 영화 개발에 뛰어들어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1937)'로 그 형식을 완성했다. 이 영화는 앞으로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여 새로운 시장을 지배하게 될 거대한 조직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두 번째 틈새는 자동차 모양으로 다가왔다. 디즈니는 자동차가 미국인들의 여가 방식을 바꿔 놓을 것임을 깨달았다. 그는 전략적인 위치에 세운 호화로운 테마파크가 가족 여행에 혁신을 가져올 것이라 믿었다. 그가 옳았다. 1955년 캘리포니아에서 문을 연 디즈니랜드를 시작으로 그는 틈새를 이용한 또 하나의 거대한 조직을 구축했고, 이후로 그 조직은 테마파크 산업을 지배하게 되었다.

디즈니는 세 번째 기회를 포착했다. 그것은 바로 TV였다. 당시 사람들은 TV를 단순히 집에서 보는 영화 또는 화면이 딸린 라디오 정도로 여겼지만, 디즈니는 그 속에서 완전히 새로운 매체를 발견했다. 그는 '미키마우스 클럽'과 같은 자산을 이용해 이 새로운 시장에 무수한 콘텐츠를 제공할 세 번째 조직의 설립에 착수했다."


월트디즈니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다른 생각을 했다. 그는 보편적인 것을 거부했다. 디즈니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사업에 발을 담구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이 가지 않는 영역에 가서 우물을 팠다. 그래서 오래 전인 2차 세계대전 2년 전인 1937년에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 애니메이션을 만들었고, 한국전쟁이 발발한 5년 뒤 디즈니랜드 테마파크를 오픈했다.

디즈니는 큰 판을 짰다 그렇지만 판의 크기는 크지 않아도 된다. 작은 판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남의 판이 아니라 새로운 판을 짰는지 여부이다.
그렇지만 막상 판을 짜려고 하면 부담스런 일로 다가온다. 우리는 거대한 기계 시스템안의 톱니바퀴로 순응하도록 훈련받아왔기에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벗어날 때가 되었다.




미래 경쟁사회에서 창조적 독점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경쟁의 구도속에 있다. 경쟁의 프레임 안에 있는 것이다. 경쟁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있고 있으며 경쟁하기를 포기하는 자들은 낙오자로 낙인찍힌다. 선의의 경쟁이라는 말을 하지만 선의란 말을 붙였을뿐 경쟁이라는 단어의 본질적 의미는 바뀌지 않는다.

경쟁은 태어나서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다. 유치원과 초등학교는 타인과의 경쟁을 인식하지 않고 살아간다해도 중학교에 입학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학생들은 학교내의 공기가 차가워진 것을 직감한다. 모든 학생들은 대학 입시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서 모든 것을 건다.


자신이 공부하고 싶은 분야의 대학교나 학과를 위해서 불철주야 노력하는 것은 맞다. 그런데 대부분의 중고등학생이 모두 대학에 갈 필요는 없다. IT를 기반으로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돌입한 요즈음 빠른 기술 속도의 변화로 대학 학문이 실무와 괴리가 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오히려 특정 분야에 대해서는 대학을 가지않고 고등학교에서 기술을 습득하고 사회로 빠르게 진출하는 것을 권장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지만, 대학을 진학하기 위한 교육 시스템안에서 경쟁하기를 거부하거나 포기한 학생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싸늘하다. 명절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대학 입시를 앞둔 수험생의 경우 명절 증후군이 있다. 명절이 부담스러워진다.
명절이 되어서 반가운 친척을 만난다. 거기 까지는 좋다. 그런데 어른들은 질문하기 시작한다. 대학은 합격했는지, 합격했다면 어느 대학에 합격했는지 질문에 답하는 것이 어렵다. 스트레스 받는 학생은 명절에 참석하는 것을 아예 거부한다.

물론 모든 우리의 어르신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경우를 보면 그런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경쟁은 건강하며 경쟁에서 살아남은 자를 승자라고 치켜세운다. 당연히 패배한 사람은 낙오자 신세가 된다.
비단 근래 들어서 있는 일은 아니다. 1970년대 대한민국은 경제성장과 함께 경쟁 사회를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사회 구조속에서 우리는 경쟁은 선하다라는 생각이 머리속에 인식되었다.
어쩌다 우리는 경쟁의 구도속에 갇히게 되었을까? 숨이 막히는 경쟁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경쟁을 벗어날 방법은 있다. 또한 간단하다.
그저 지금 이 순간부터 경쟁하기를 거부하면 된다. 
경쟁하기를 거부한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경쟁하기를 거부한다는 것은 그저 나의 길을 간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말을 간단하지만 사실 '경쟁하기를 거부하는 일'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사회의 관념과 통념에서 벗어나는 일을 해야한다.
모든 사람이 노라고 해도 나는 예스하면서 나의 길을 가야한다.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다.

경쟁하는 곳은 언제나 사람들이 붐빈다. 모두들 그 곳에 정답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힘들게 치열한 경쟁속에서 살아남는다 해도 경쟁의 구도속에 갇힌 이상 더 뛰어난 경쟁 상대들과 대면해야 한다. 새로운 경쟁 상대들은 예전의 상대들과는 비교되지 않는다.
경쟁의 구도속에 들어선 이상 다람쥐 쳇바퀴를 빨리 굴릴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창조적 독점으로 경쟁을 이긴다.


사회에 팽배한 경쟁에 대한 인식은 미국의 상황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페이팔을 공동 설립한 피터틸은 '제로투원'에서 경쟁을 뛰어넘는 창조적 독점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창조적 독점이란,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서 모든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동시에 그 제품을 만든 사람은 지속 가능한 이윤을 얻는 것이다.
경쟁이란, 아무도 이윤을 얻지 못하고 의미 있게 차별화 되는 부분도 없이 생존을 위해 싸우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경쟁이 건강하다고 믿는 걸까?
그것은 경쟁이 단순히 경제학적 개념이나 개인 또는 기업이 시장에서 겪어내야 하는 불편함이 아니라 하나의 강박관념, 즉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침투해 있는 이 이데올로기가 우리의 사고를 왜곡하고 있다."

그는 경쟁은 하나의 이데올로기이고 우리의 생각을 왜곡시키고 있다고 역설한다.
경쟁을 설파하고 경쟁을 뼛속 깊이 새기고 실천해도 경쟁을 더 많이 할 수록 우리가 얻는 것은 오히려 줄어든다.
경쟁에 혼심을 다하면 더 많은 것을 얻어야 하는데도 얻는 것은 오히려 줄어드는 것이다.


피터틸은 교육 시스템이 사람들을 세뇌하고 있다고 말한다.
교육 시스템은 경쟁에 대한 집착을 부추기고 있고, 성적이라는 것 자체가 각 학생의 경쟁력을 측정하는 도구가 된다.
오직 가장 높은 성적을 받은 사람만 특정 지위와 자격을 부여받는 구조이다.

학생들은 끝이 없는 토너먼트에 뛰어들게 되지만 더 높이 올라갈수록 사정은 더욱 나빠진다. 

피터틸 역시 명문인 스탠퍼드 로스쿨에 등록했다. 로스쿨의 1등 성공의 뱃지는 대법원에서 근무하는 것이다. 그가 뛰어들었던 경쟁의 토너먼트도 만만하지 않았다.
그는 스탠퍼드 로스쿨에 입학해서 치열하게 경쟁했다. 그런데 매년 미국에서 졸업하는 수만명의 로스쿨 대학원생 중에서 대법원의 직원으로 근무할 수 있는 사람은 수십 명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는 다른 길을 가야한다. 피터틸 역시 케네디 대법관 및 스캘리아 대법관의 보좌관에 지원했지만 최종 경쟁에서 탈락했다.


그런데 그는 경쟁에서 탈락하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경쟁하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길을 가기로 결단한 것이다. 경쟁의 구도와 경쟁의 프레임에서 과감히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그는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런 결정에 다른 사람은 그에게 패배자의 시선을 보냈다. 그렇지만 결국 그는 남들이 하지 않는 창조적인 일을하고 페이팔을 설립하고 저명한 기업인이 된다.
만약 그가 대법관 보좌관직에 합격했다면 그는 자신만의 창조적인 것을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평생 사건 조서를 쓰거나 다른 사람의 사업 계약서의 초안을 쓰면서 평생을 보냈을 것이다. 물론 법원에서 사건 조서를 쓰거나 사업 계약서 초안을 쓰는 일이 잘못된 일이란 말은 아니다. 그 일에 자신의 꿈과 사명이 있으면 된다. 그렇지 않은 것이 문제이다. 경쟁의 이데올로기 사회에서 다른 길을 안내하는 곳이 국내에도 있다. 바로 거창고등학교다.

창조적 생각, 거창고등학교 직업선택 십계명


대부분 고등학교가 입시 위주의 교육에 치중하는데 미션스쿨인 거창고등학교는 학생들에게 농사일과 가축 키우기, 눈싸움, 눈오는 날 에는 선생님과 학생들의 토끼몰이, 눈싸움 예술제 등을 하면서 교육을 시킨다. 일반적인 학교라면 시간 낭비라고 극성 학부모들이 데모할 일이다. 거창고는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불리우면 무소유의 삶을 살다간 고 장기려 박사가 이사로 취임한 학교이기도 하다.


거창고등학교는 직업 선택 십계명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곳을 따라가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소신과 사명을 가지고 자신만의 길을 갈 것을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는 학생들에게 가이드한다.
다음, 거창고등학교의 직업선택 십계명을 천천히 읽어보자. 

제1계명,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제2계명,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제3계명, 승진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제4계명,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제5계명,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은 곳으로 가라.
제6계명,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제7계명, 사회적 존경 같은 건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제8계명,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제9계명,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이 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제10계명,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거창고등학교의 직업선택 십계명은 사회적인 통념과 반대되는 길을 제시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월급이 많은 쪽을 선택한다.
당연히 승진의 기회가 있는 곳을 직장으로 택하고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은 절대 가지 않는다.
그렇지만, 세상에 역행하는 거창고 학생들은 돈이나 출세보다 더 중요한 것을 깨닫는다. 

거창고 학생들은 거창고 졸업생 건축가가 세운 다리는 무너지지 않고, 거창고 졸업생 의사는 사람의 목숨을 그 무엇보다 소중하고 여긴다. 선배들에 대한 자부심이다. 학생들이 거창고등학교의 직업선택 십계명을 따라 산다면, 경쟁의 사회에서 경쟁하지 않고 이길 수 있다.
경쟁하지 않고 경쟁자를 이기는 최고의 방법이다.
처음에는 사회의 낙오자나 패배자처럼 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세월이 흐르면 그들이 승리자이며, 인생에서 경쟁의 프레임을 깨트린 진정한 창조자가 된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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