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일중독자가 되지 말라


한국 사회는 일중독 문화를 찬양하는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다. 회사에서 밤새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서 쪽 잠을 자고 있는 직원은 회사 선배나 상사에게 칭찬을 받는다. 물론 회사 생활 중에 중요한 업무가 있어서 피치못할 사정으로 야근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야근이 매일 반복되거나 일주일의 절반을 차지한다면 문제가 심각하다.

사회 생활 초년시절에 나는 한 가지 연구를 했다.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었다. 회사내에서 일잘한다고 상사에게 인정받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사회적으로 멘토링이 유행했던 때라 나의 롤모델을 찾아보기로 했다.
나는 회사 내에 이른바 잘나간다는 선배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몇 년간 진행된 나만의 프로젝트에서 상사에게 인정받는 사람의 유형을 몇가지로 분류할 수 있었다. 유형은 세 가지 정도로 압축되었다.
첫번째는 진짜 일잘하는 사람이었고, 두번째는 관계성이 좋은 사람이었다. 마지막 세번째는 집에 않가는 사람이었다.

첫번째 진짜 일잘하는 사람은 이른바 회사내에 1% 미만의 사람이었다. 일에 대해서 뛰어난 천재였다. 아니 영재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할 일을 척척해내는 마법사였다. 일반적인 사람 같지 않았다. 너무 뛰어나서 나의 롤모델이 될 수 없었다.


일 잘한다고 소문난 수상한 선배


그런데 연구 중에 재미있었던 사실은 세번째 집에 않가는 사람이었다. 그냥 집에 않가는 정도가 아니라 일주일에 거의 매일 회사에서 초췌하게 야근을 한다. 어떨 때는 충혈된 눈으로 사무실 책상에서 아침에 출근하는 직원을 맞이한다. 상사는 고생이 많다고 얼큰한 콩나물국을 사준다.

물론 회사내 프로젝트의 납기 일정이 지연될 위기에 있다면 야근을 해서라도 고객의 납기를 맞추는 것이 프로페셔널이다.
근데 문제는 바쁜 일이 다 끝났는데도 집에 가질 않는다. 결혼도 했다. 나는 장난기가 발동했다. 선배가 오늘도 야근을 한다고 하기에 무슨 일로 바쁘냐고 먼저 물어보았다. A건으로 작업할 일이 많다고 한다. 그날은 나도 야근을 하는 날이기에 정말 뭐하나 유심히 살펴볼 요량이었다.


사무실에 직원이 하나 둘 퇴근하시 시작해서 넒은 사무실에 직원이 3~4명 정도 남았을 때 사무실 비품을 가지러 가는 도중에 선배의 자리를 지나쳤다.
열심히 작업할 일들이 많다던 직원의 노트북 화면은 한창 사회에서 유행하는 영화가 보였다. 선배는 이어폰을 꽂고 영화에 몰입 중이었다.

"오늘만 그런가?" 나는 여러 번 샘플링? 검사를 해보았다. 그런데 여전히 많은 경우 직원들이 대부분 퇴근하고 나면 영화를 보거나 인터넷을 하면서 혼자만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방식으로 야근을 하고서도 회사의 야근 수당을 신청해서 언제나 월 야근 수당 총액이 팀내 1위가 되는 것이다. 물론 회사에서 영화를 보고 놀아도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한다고 항변하면 할 말은 없다. 그런데 매번 이런 상황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자신의 몸에도 무리가 가고 소중한 시간과 회사 자원에도 낭비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야근하는 사람의 많은 경우는 상사의 업무스타일과 관련이 있는 경우가 많다. 직장 상사가 오랫동안 익숙했던 야근 문화를 버리지 못하고 암묵적으로 야근을 강요하는 문화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상사보다 일찍 퇴근하는 것을 죄악시하고 늦게까지 근무하는 것을 바라는 것이다. 이건 한국 경제가 고속 경제성장 가운데 만들어낸 권위적 분위기의 병폐였다.


독일 직장인의 회사생활


얼마 전 독일 직장인의 하루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다큐멘터리에 나온 독일 직장인의 경우에는 퇴근 시간이 되면 컴퓨터를 종료하고 바로 업무를 마쳤다. 그런데 독일 직장인이 그렇게 할 수 있는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업무시간내에 모든 업무를 마치려고 점심 시간에 어디 가지 않고 집에서 샌드위치를 싸와서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일에 집중한다.

기자가 물으니 자신은 업무시간내에 업무를 끝내기 위해서 불필요한 일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점심은 샌드위치로 매일 간단히 때운다고 했다. 또한 혹 끝나지 못하는 업무는 스프레드시트에 정리해서 자신이나 다른 근무자가 알 수 있도록 공유하는 것도 일반화되었다. 자신의 업무를 비밀처럼 숨기지 않았다.


우리나라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을 식사하는데 모두 할애하는 것과 대비된다. 일단 점심시간 뿐아니라 다큐멘터리에 나온 독일 직장인은 업무시간내에 업무 몰입했다. 가령 밖에 나가서 잡담을 한다든지 업무 회의 핑계대고 커피마시러 가지 않는다.

우리는 설렁설렁 일할 때 그들은 최대한 몰입해서 업무시간내에 모든 것을 마치려 애쓴다.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에서 근무시간 비율이 다른 국가들보다 높은 것은 업무시간의 집중도 와도 관련이 있다.

일중독은 나를 죽이고, 다른 사람을 넘어트리고, 회사를 망하게 한다


37signals의 창립자인 제이슨 프라이드는 '똑바로 일하라'에서 일중독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일중독자들은 불필요할 뿐 아니라 어리석기까지 하다. 남들보다 오래 일한다고 해서 꼭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거나 더 많은 일을 하는 건 아니다.
일중독은 득보다 실이 많다. 무엇보다도, 그런 식으로 일하면 몸이 상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오히려 남들보다 더 적게 일할 수밖에 없다."


물론 나 역시 일이 많아서 한달 내내 야근한 적도 있다. 야근이 체질에 맞지 않아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야근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래도 일이 많을 때는 어쩔수 없이 야근을 했다. 그렇지만, 일이 없는데도 야근을 즐긴다면 이미 일중독자의 길을 가는건 아닐까?

사실 우리 사회의 분위기도 무시할 수는 없다. 일을 모두 처리해서 퇴근하고 싶지만 상사가 눈치를 주면 퇴근할 수 없다.
일중독을 직장 상사가 유도해서는 않된다. 유교 문화의 한국 사회는 상사가 퇴근하기 전에 퇴근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보는 시선을 거두어야한다. 요즈음에는 물론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상사가 퇴근하기 전까지 퇴근을 하지 않고 눈치를 보는 것이 관례다.

잘 쉬는 것이 중요하다


제이슨 프라이드는 이런 일중독자를 회사에 악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라 평가한다.
"일중독자들은 늦게까지 남아 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위에서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이라고 비난하며 죄책감을 심어주고 사기를 떨어뜨린다. 그 결과, 의자에 엉덩이만 붙이고 보자는 태도가 만연해진다. 사람들이 실제로 일은 하지도 않으면서 의무감 때문에 늦게까지 남아 있는 현상이 나타난다.

일만 하고 살면 올바른 판단력을 잃는다. .. 요컨대, 일중독자들의 실제 성과는 오히려 정상인들보다 못하다.
일중독자들은 영웅이 아니다. 그들은 세상을 구원하지 못한다. 단지 쓸데없이 자기 몸만 학대할 뿐이다. 진짜 영웅은 벌써 일을 끝내고 집에서 쉬고 있다"

인생은 장기전인데 젊은 시절 자신의 몸을 모두 혹사하면 나중에는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일과 가정 생활은 균형있게 조화되어야 한다.

북유럽 스타트업 사업가 마틴 베레가드는 휴식과 성공을 이렇게 정의한다. "억울하겠지만, 잘 쉬는 사람이 더 크게 성공한다!"
일과 가정의 조화가 어렵다면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생각해보자. 궁하면 통한다. 쉼은 우리에게 중요하다. 일할 때는 열심히 일하고, 쉴 때는 잘 쉬는 사람이 가정과 사회에 꼭 필요한 생수같은 사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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